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로이센-프랑스 전쟁 (문단 편집) ==== 주변국들과의 군사적 동맹 유지 ==== 아울러 [[러시아 제국]] 및 [[이탈리아 왕국]]과는 군사적 동맹 관계를 유지했으며, [[대영제국|영국]]과도 친선 정책을 펼쳤다. 아직 프로이센이 [[세계 정책]]을 펼치기 전인 유럽의 신흥국이었고 영국의 식민지 정책과 충돌했던 프랑스를 프로이센이 공격하는 게 영국의 국익에 부합했기 때문에 영국은 중립적이었다. 게다가 [[빅토리아 여왕]]의 남편 [[앨버트 공]]이 친프로이센파였던 데다 영국 왕가는 독일계 [[하노버 왕조|하노버]]-[[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|작센코부르크고타]]로서 그 정체성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.[* 이것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세계대전 들어 왕조명을 '[[윈저 왕조|윈저]]'로 갈아 버리면서였다.] 영국 왕실과 프로이센은 사돈지간이기도 했다.[* 프로이센 '[[프리드리히 3세(독일 제국)|프리드리히 왕태자]]'와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인 '[[빅토리아 애들레이드 메리 루이자|빅토리아 공주]]'가 결혼.] [[동맹의 역전]] 이후로 프로이센의 독일과 영국은 계속해서 돈독한 사이를 유지해 왔다. 영국 입장에서는 프로이센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그 범위는 어디까지나 중부유럽으로 한정되어 있었기에 러시아 제국이나 프랑스, 그리고 [[오스만 제국]]처럼 비유럽 지역이나 해상에서 피터지게 싸울 일도 없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